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호법운동 (문단 편집) === [[영풍함 사건]] === 하지만 쑨원과 천중밍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면서 천중밍은 6월 16일 [[영풍함 사건]]을 일으켜 쑨원에 대한 쿠데타를 감행했다. 쑨원은 광동에서 축출되었고 북벌은 중단되었다. 이후 [[1차 직봉전쟁]]의 결과로 [[직예군벌]]들이 베이징을 장악하고 직계의 수령 [[차오쿤]]을 대총통으로 추대하고자 했다. 여기에 구국회 참의원 의장 왕가양과 중의원 의장 [[우징롄]] 등이 구국회를 회복시키면 안복국회에서 선출된 대총통 [[쉬스창]]의 법률적인 지위를 취소시킬 수 있다는 점, 베이징 정부가 법통을 이어나가게 된다는 점, 서남의 호법운동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차오쿤의 대총통 당선이 유리하다고 직예군벌을 설득했고 이에 직예군벌들은 5월 20일 텐진에서 국회 회복을 준비하게 했다. 6월 12일 광저우의 민우사 의원들과 상하이의 익우사 의원들이 호응하여 북상했고 리위안훙이 6월 13일 1917년 6월 12일의 국회 해산령을 취소한다고 선포했다. 1922년 8월 1일 구국회가 정식으로 개회하면서 호법국회는 사라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